예전에 트위터에 쓴 사계 필리버스터 타래를 읽어보니 마음에 안 드는 점도 많고 무엇보다 일단 제가 끝까지 안 써놨더라구요. 이제 와서 타래를 다시 잇자니 좀 민망해서(??) 수정도 좀 할 겸 글을 새로 써 봤습니다. 마침 2025년이 비발디씨의 사계(그리고 나머지 Op.8)이 출판 300주년을 맞는 해라서, 맞춰서 올…렸으면 좋았겠지만 뭐 300주년이나 301주년이나 크게 다르기야 하겠어요.(??) 사실 이미 사계에 관한 좋은 설명글은 너무나 많아서 굳이 뭔 아마추어의 글을 하나 더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래도 정보성 글이라기보단 그냥 오타쿠로서 필리버스터를 한다고 생각하고 쓴 글입니다. 당장 다 읽으실 필요는 없는 글이지만 언젠가 사계 연주회를 가신다거나 관련내용으로 과제를 하신다거나, 아무튼 여러분께 사계와 찐하게 엮일 일이 생겼을 때 요긴하게 쓰인다면 참 기쁠 것 같아요.

0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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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씨에 대한 소개를 우선 해야 할까요? 아마 이 게시글에 오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는 1678년생 1741년몰의 베네치아 출신 작곡가로, 수상쩍게 돈을 좋아하시지만 일단은 25살 때 사제로 서품받은 가톨릭 성직자이며, 베네치아의 보육원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Ospedale della Pietà)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쳤고, 오페라 흥행주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정도로만 간략히 적어 두겠습니다. 뭐 이게 비발디씨에 대해 소개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니까요. 그치만 비발디씨와 친해지고 나서 듣는 사계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조금 더 재밌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하단에 달아 둔 비발디 소개글 노션 링크를 한번 참고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은 아직 미완성이지만요.

비발디씨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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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인 1725년, 비발디가 47세가 되는 해 출판된 협주곡집 Op.8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의 1~4번곡에 해당하는 곡입니다. 출판년도는 1725년이지만 작곡년도는 그보다 좀 더 이전으로 추정되고 있구요(1716~17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추측도 있습니다). 사실은 바로크 시대 작품집들이 대부분 그렇듯 Op.8도 한 다스(=12곡)의 협주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엄밀히 말하면 <사계>라는 하나의 곡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대에도 다들(비발디 본인 포함) 사계는 어쩔 수 없이 한 세트로 묶어 불렀으므로, 저희가 한 곡으로 취급한다고 해서 비발디씨가 갈!! 하실 것 같지는 않네요.

이 곡이 표제음악이며 작자 미상의 소네트가 딸려있다는 사실은 너무 유명한 사실이죠. 사실 소네트라고 해서 뭐 그렇게 문학적으로 잘 쓴 작품은 아니고 어설픈 아마추어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21세기 청중으로선 소네트도 명작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비발디씨가 유구하게 음악 외적인 데 에너지 쏟고 싶어하는 타입은 아니라, 아마 '내용만 통하면 됐지 뭐하러 글 퀄리티를 신경써'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작곡가가 직접 달아준 곡 설명을 빼놓고 감상을 쓴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겠어요? 소네트 번역은 아래 필리버스터 항목에서 각 계절별로 달아 두었으니 같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번역은 영어 번역본과 여러 한국어 번역본을 참고해 제가 직접 번역했는데, 하찮은 어학능력 이슈로 틀린 번역도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n년째 양치기들이 뜬금없이 '시원한 옷을 입으면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 위키백과 번역본보단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체 왜…??

대체 왜…??

모름지기 비발디 오타쿠라면 사계에 대해서 조금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기 마련이겠다만('비발디의 수많은 곡 중에서 사계만 유명하다니 너무 안타까워!'), 그렇다고 사계가 명곡이 아닌 건 아니죠. 사실 개인적으론 들으면 들을수록 사계는 '비발디씨 이거 쓸 때 신내림 받으셨어요?' 싶은데, 스토리텔링이라는 하나의 목적 하에 비발디씨가 정말 잘하는 것, 평소에 잘 안하는 것, 새로 시도해본 것 모두가 한 5백 퍼센트의 시너지를 내고 있거든요. 그리고 사실 정말 재밌는 곡입니다. 너무 익숙하고 식상한 곡이라고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울 정도로요. 정말로 ‘사계 안 들은 뇌’를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오랜만에 한번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사계를 들어보신다면 놓치고 있던 재밌는 포인트를 찾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02. 세부 감상 및 필리버스터

원래 필버 쓸때 영상은 보통 총보 있는 버전으로 골라오는데 사계는 사실 연주를 해본 적이 없어서 연주자 시점에서 쓸 게 아니라 굳이 총보를 가져오지 않아도 괜찮겠다 싶네요,,,, 그래서 그냥 제가 좋아하는 연주영상 중 하나 가져왔습니다. CC로 소네트도 달아주시니까 혹시 영상 보면서 여긴 소네트의 어떤 부분이지? 가 궁금하시면 켜고 보셔도 좋겠네요.

https://youtu.be/aryDMAP6oug?si=Rz0ypcYCimMBN2uX

1) 봄

봄이 왔다.

새들은 즐거운 노래로 봄을 맞이한다.

시냇물은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속삭이듯 흘러간다.

봄을 알리는 천둥과 번개가 포효하며

하늘에 검은 장막을 드리운다.

그 후 이들이 조용해지면

새들은 다시 한 번 매혹적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꽃이 만발한 초원의

속삭이는 나뭇잎들 아래서,

양치기는 잠들어 있다

그의 충직한 개를 옆에 두고서.

전원의 경쾌한 백파이프 소리에 맞추어

님프와 양치기는 가볍게 춤을 춘다

눈부시게 빛나는 봄 하늘 아래서.

사계에서 제일 좋아하는 파트는 물론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사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이코닉한 파트가 봄 1악장의 시작 부분이라는 건 아마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이 통화연결음, 각종 안내방송, 화장실 브금... 등으로 수도 없이 들으셨을 곡이자, 과장 좀 보태서 비발디씨를 200여년간의 듣보작곡가의 구렁텅이 속에서 건져낸 바로 그 곡입니다. 비발디 장조곡 특유의 고채고명 사운드로 명료하게 쏙쏙 귀에 꽂히는 멜로디, 요소 하나하나 그림 그리듯 묘사한 봄 풍경이 정말 시대를 불문하고 대중들에게 안 먹힐 수가 없는 곡이죠. 물론 역으로 너무 많이 들려서 역효과를 내기도 하는 곡이지만요…

소네트 내용 상으로 보면 비발디씨는 그래도 봄에는 개인적인 악감정이 없으신 것 같죠..?? 사계 내에서 가장 예쁜 그림으로 표현된 계절이 봄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태풍이 중간에 한번 지나간 건 기분 탓이겠지만요...(??) 뭔가 그래서 그런가 다른 계절들이 (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표현된 반면, 봄은 비교적 ‘이상화된 계절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해요. 상투적이고 재미없게 느끼신다면 유감이지만, 그만큼 음악적 묘사들이 직관적으로 와닿는 곡이기도 합니다. Tmi지만 제가 학교에서 사계를 감상곡으로 듣던 초등학생 시절 정말정말 재밌게 들었던 묘사들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빕타쿠가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