빕타쿠로 살아온 지 어언 1n년… 비발디 관련자료를 한데 모아둘 필요성을 느껴 이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이전에 탐라분들이 쓰시던 ‘내새끼를 소개합니다’를 따라했는데 비발디씨를 차마 내새끼라고 부르지는 못하고(?) 제목이 삭막해졌네요.
문서는 아직 미완성이고 앞으로 차차 업데이트하려고 합니다…(수정이력은 아래에 간단히 달아두겠습니다.) 한꺼번에 다 읽어달라는 목적으로 썼다기보다는 여러분들이 혹시나 비발디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와서 찾아보시는 용도로 사용하신다면 좋겠네요. 참고로 내용 면에서든 문서형식 선에서든(노션 쓰는 데 서툴러서…) 오류사항은 제보해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v0.1 - 최초 업로드 (2023. 8. 23)
v0.2 - 일부 토글 및 TMI 업데이트 (2024.5.21)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는 1678년 3월 4일, 당대 베네치아 공화국이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이발사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조반니 바티스타 비발디, 어머니는 베네치아 재단사의 딸인 카밀라 카타리나 비발디였고요. 세례 기록을 보면 어떤 ‘죽음의 위험’ 때문에 탄생 당시 즉석에서 산파가 긴급 세례를 내렸고, 이후 5월 6일에 정식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비발디가 태어날 때 베네치아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설은 위의 ‘죽음의 위험’이 이상하게 해석되어 생겨난 썰로, 별 신빙성은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비발디 가족은 경제적으로도 그닥 여유롭지는 않았고, 신분으로 따져도 당대 베네치아에서는 서민층이었습니다. 비발디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지만, 그가 작곡가로서 활동할 때도 낮은 출신 신분에 대한 은근한 차별적 시선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예를 들어 피에타에선 비발디가 실질적으로 그에 걸맞는 업무를 했어도 그를 끝까지 음악감독(Maestro di Coro)로 임명하지 않았던 점이나, 베네치아에서 가장 ‘귀족적인’ 극장인 조반니 그리소스토모 극장은 비발디의 공연을 올리지 않았던 것 등…) 어떻게 보면 그가 왜 그토록 자낳괴였는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합니다.
비발디는 10남매 중 둘째(영아사망 인원 고려)/ 7남매 중 첫째(영아사망 인원 제외)로 태어났습니다. 비발디는 평생 가족들(부모님과 몇몇 여동생)과 함께 살았고, 물론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가족들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은 추측할 수 있겠네요.
비발디의 유년 시절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가 15살이 되던 1693년부터 1703년까지, 딱 10년을 들여 사제 서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비발디는 사제 교육을 받는 와중에도 계속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그의 음악활동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1696년 산 마르코의 두칼레 성당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연주회에 바이올린 주자로 참여한 것과, 1701년 볼로냐의 한 음악가가 조반니 바티스타 비발디와 ‘그만큼 비르투오직한’ 그의 아들에 대해 증언한 편지 정도가 있겠네요.